독립유공자
원도인(元道仁) | |
활동분야 | 항일의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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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강원 원주 |
출생년월일 | 1908 |
사망년월일 | 미상 |
노문성(盧文成) 의진에 가담하여 강원도 강릉(江陵)·횡성(橫城)·양구(楊口)·인제(麟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5년 11월 「을사륵약(乙巳勒約)」으로 일제에 의해 자주적 외교권이 박탈되고, 이듬해 1월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되어 국왕의 통치권이 현저하게 손상되는 국망의 상황이 도래하였다. 이렇게 되자 우리 민족은 본격적인 반일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당시 그것은 크게 두 방향에서 전개되었다.
하나는 장기적인 실력양성운동으로 신문과 잡지를 통한 언론 활동, 종교와 그 단체를 통한 종교 활동, 각종 학회와 사립학교 설립을 통한 교육 활동, 국어와 국사 연구를 통한 학술 활동 등 각 방면의 국민계몽운동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즉각적인 무력투쟁인 의병운동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그것은 1907년 7월「정미7조약(丁未7條約)」에 따른 군대해산으로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전국적인 국민전쟁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원도인은 이 같은 시기인 1907년 7월 노문성 의진에 가담하여 강원도 강릉·인제·양구·횡성·홍천(洪川) 등지에서 여러 차례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는 등 의병활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피체되어 1908년 9월 19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유형(流刑) 5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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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자료 | 註·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243·244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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