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송병기(宋秉箕) | |
활동분야 | 3.1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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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강원 원주 |
출생년월일 | 1891.4.30 |
사망년월일 | 1930.5.18 |
1919년 4월 12일 호저면 매호리[당시 횡성군 서원면(書院面) 분일리(分一里)]에서 성태현(成泰鉉)·박민희(朴民喜)·이정헌(李正憲)과 함께 송병창(宋秉昌)의 집에 모여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기로 협의하고 주민 70여명을 규합하여 매호리내 향산(香山)과 수동(水洞) 사이의 뒷산에 올라가 봉화(烽火)를 올리고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이 만세소리를 듣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다시 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산에서 내려와서 마을을 순회하며 밤새도록 시위를 하다가 날이 샐 무렵에야 해산하였는데 그는 주동자의 한 사람으로 일본경찰에 피체되었다.
이해 5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8년경 신간회(新幹會) 청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한편 1945년에 이르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며 우리의 민족혼 찾기 운동에 앞장서는 등 활동을 계속하였다.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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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자료 |
註·판결문(1919. 5. 15 경성지방법원)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579∼581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950∼952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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