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인물
이달 | |
활동연도 | 1539~1612 |
---|---|
조선 중기의 시인(詩人)으로, 본관은 홍주(洪州), 자(字)는 익지(益之), 호(號)는 손곡(蓀谷)이다. 부정(副正)이었던 부친 이수함(李秀咸)과 홍주(洪州, 홍성) 고을의 관기(官妓) 사이에 태어난 서출(庶出)이었다. 그의 제자 허균(許筠)이 지은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에서, "손곡산인 이달의 자는 익지이니, 쌍매당 이첨(李詹)의 후손이다."라고 밝힘으로써 신평(新平) 이씨(李氏)로 잘못 알려지기도 하였다. 지금의 원주시 부론면 손곡에 묻혀 살았으므로 호를 손곡이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당시의 유행에 따라 송시(宋詩)를 배우다가 정사룡(鄭士龍)으로부터 두보(杜甫)의 시를 배웠다. 한편, 시풍(詩風)이 비슷한 최경창(崔慶昌)·백광훈(白光勳)과 어울려 시사(詩社)를 맺어 문단에서는 이들을 '삼당시인(三唐詩人)'이라고 불렀고, 이들은 임제(林悌)·허봉(許 )·양대박(梁大樸)·고경명(高敬命) 등과도 자주 어울려 시(詩)를 지었다. 한때 한리학관(漢吏學官)이 되었고, 중국 사신을 맞는 접빈사(接賓使)의 종사관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그의 시는 신분제한에서 생기는 한(恨)과 애상(哀想)을 기본정조로 하면서도 따뜻하게 무르녹았다. 근체시(近體詩) 가운데에서도 절구(絶句)가 뛰어나 김만중(金萬重)은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조선시대의 오언절구(五言絶句) 가운데 대표작으로 그가 지은 '별이예장(別李禮長)'을 꼽았다. 1725년 정진교(鄭震僑)의 상소(上疏)에서는 성종(成宗) 이후의 서얼(庶孼) 가운데 걸출한 인물로 박지화(朴枝華)·어숙권(魚叔權)·조신(曹伸)·이달(李達) 등이 거론되었다. 그는 신분 때문에 관직에 나아가 자신의 포부를 마음껏 펼치지는 못하였으나, 신분에 제약을 받지 않는 시 창작에서만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자신의 신분을 한탄하면서 세월을 허비한 사람이 아니라, 그러한 고통을 시로써 승화시킨 시인(詩人)이었다. 묘소는 전해오지 않으며,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군청 앞과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에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시집(詩集)으로는 그의 제자 허균이 엮은 <손곡집(蓀谷集)>이 있고, 이밖에 유형(柳珩)이 엮은 <서담집(西潭集)>이 있었으나 현재 확인되지 않고 있다. |
- 이전글 조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