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도자료

작성일 2004.02.01 조회수 1011
시정소식 > 보도자료 > 시정보도자료 상세보기 - 제목, 담당부서, 문의전화, 내용, 파일 제공
『북원문화권의 정체성과 원주지역 불교문화연구』세미나 개최
담당부서 문화체육과

 ■『북원문화권의 정체성과 원주지역 불교문화연구』세미나 개최


Ⅰ. 강원발전연구원이 주관하고, 강원도·원주시가 공동 주최하는「북원문화권의 정체성과 원주지역 불교문화연구」세미나가 2004년 2월 3일(화) 13시 30분부터 17시 40분까지 원주시 원동 소재 원주문화원 공연장에서 개최됨.

Ⅱ. 이번 세미나는 강원도와 원주시의 요청으로 연구수행 중에 있는「북원문화권 조성사업」계획 수립을 위한 1차 세미나임.

Ⅲ. 원주는 교통발달 이전 남한강을 중심으로 내륙 물류유통 등 경제뿐만 아니라 불교 문화중심지로서 나말여초에 불교문화의 독창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북원문화권의 정체성과 원주지역 불교문화연구」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함.

Ⅳ. 주제별 발표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음.

   <기조사> 북원문화권과 불교정체성
     연설 : 박형진(전 원주문화원장)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전국을 九州五小京으로 편제할 때 원주를 北原小京으로 설치하였음.
  九州五小京 설치당시 한강 이남에 四小京을 두고 한강 이북에는 오직 원주에 小京을 두었으며, 이를 深甚히 살펴볼 때 다른 小京은 백제·신라 영토에 속해 있던 것이고, 원주만이 고구려에 속해 있던 平原郡이었음.
  북원경은 삼한을 통일하기 위한 발상지로 기록되어야 하고 우리 민족의 근원과 영구한 미래를 위한 샘터임.
  불교의 정체성은 삼국시대·고려시대까지의 국가통치 이념이었다고 할 수 있음.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1,600년 전 그 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며, 대부분의 언어·관습까지도 불교적인 것임.
  원주지역의 불교는 上院寺의 창건과 보은의 설화, 남한강 유역의 法泉寺·居頓寺·興法寺 등의 사찰을 보면 신라와 고려시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음을 알 수 있음.
  고려시대 원주가 불교 중흥지로 각광을 받았고 또한 많은 인재를 양성했음을 알 수 있으며, 거돈사지에 가면 거대한 說法場을 확연히 알 수 있고 回廊이 양옆으로 있는 것이 확인되어 교육기관으로서 사찰에서 전력을 경주하던 당시의 역할을 익히 볼 수 있음.
  앞으로 이러한 원주지역의 불교문화에 대한 더욱 전문성 있는 연구와 확인을 통해 북원문화의 정체성을 정립함이 중요과제 생각함.

   <제1주제> 신라·고려전기 북원문화권 불교의 성격
     발표 : 김혜완(강원대·연세대 강사)

  원주지역의 영역변화와 범위는 나말여초 고려전기까지 현재 원주시 일원을 비롯하여 대체적으로 영월·제천·평창·단양·영춘·주천·여주 등지까지 확대해 볼 수 있을 것이나 현재 원주권과 직접 관계된 사료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그를 바탕으로 그 특징을 추구해 봄.
  원주지역의 화엄종은 의상의 학통을 이은 세달사와 비마라사를 통하여 그 성격을 알 수 있는데 이 2곳은 부석사와 지리적으로 가까웠고 부석사 이북으로 傳敎를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곳이었음.
  거돈사는 이후 고려 숙종대 의천의 천태종 開宗당시 高達寺· 巖寺·智谷寺·神 寺와 함께 천태종의 주요 사원으로 자리 잡았으며, 의천은 延壽의 "宗經錄"으로 인재를 선발하였는데 연수의 직제자인 거돈사의 지종은 당시 천태종 개종의 사상적 원류가 되었을 것으로 의천은 특별히 지종을 위한 제문을 짓고 있고 이후 圓妙國師 世의 碑에도 고려 천태종의 개창자로 추앙을 받고 있음. 이렇게 보면 거돈사는 선종에서 법안종풍을 거쳐 천태종 사찰로 자리를 잡았음을 알 수 있음.
  고려초 원주에서는 거돈사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흥법사가 왕건의 지원으로 부각되었으나 전쟁이 끝나고 주변에 고려 왕실과 연관된 충주 유씨의 지원을 받는 충주 정토사가 부상하였고 영월의 흥녕사도 고려 왕실과 고려 정권에 참여한 廣州, 忠州, 溟州 등의 세력들이 참여하여 재건되는 것을 보면 940년 충담의 입적 후 흥법사에 대한 왕실의 열기는 많이 축소된 것으로 보임.
  법천사에는 신라 태현계 법상종의 전통을 이어 국가의 안녕을 축원하고 미륵보살이 수행하고 있는 도솔천 상생을 위한 미륵불 예념을 해하는 미륵전이 당연히 있었을 것이고 死者追善을 위한 아미타전도 중요시설로 사원의 중앙에 위치하였을 것으로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법천사 아미타전에 놓이기 위해 만들어진 戊子銘 光明臺, 懸爐, 香  등은 이러한 신앙생활을 위한 용구였음을 보여줌.
  북원문화권의 불교는 신라 통일이래 고려전기까지 그 주도가 화엄종 선종 법안종 천태종 법상종으로 이어지는 변화를 하였으며 이러한 변화는 중앙 불교계의 변화와 시간적 차이가 없는 오히려 주도하는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음.
  또한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세달사 조신의 예에서 볼 수 있는 미륵과 아미타정토신앙의 모습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어 궁예와 같은 세력가의 정치적 도구가 될 수 있었고 각파의 변화에 무리 없이 대응할 수 있었던 것임.

   <제2주제> 원주지역의 고려시대 불교조각 : 나말려초 석불과 철불을 중심으로
     발표 : 최성은(덕성여대 교수)

  원주는 통일신라시대의 北原府(北原京)로 남한강을 따라 남쪽으로는 충주로 연결되며 서쪽으로는 여주와 양평을 지나 개경으로까지 연결되는 수운의 要路上에 위치하고 있어 각지의 物産이 모이고 조세가 운반되는 등 정치·경제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지역이었음.
  학성동 철불과 봉산동 석불에서 보이는 여러 요소들 약사불의 도상, 가사장식의 표현, 사실적이고 세속화된 분위기, 세밀하고 장식적인 세부표현 등은 기존의 신라하대의 조각전통을 토대로 하여 당시 중부지역에 알려진 도상과 양식이 반영되어 나타난 결과라고 생각되며, 당시 지리적으로 태봉 및 고려 지배지역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정치·문화적으로 중심 역할을 하였을 원주지역의 조각에서 보이는 새로운 조각경향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임.
  고려 초기에 원주지역에서 이처럼 여러 구의 비로자나불상이 조성되었다는 것은 이 지역이 통일신라 이래 화엄종, 선종의 융성했던 불교의 중심지였음을 말해주며, 또한 원주의 석불상들에서 물결모양의 주름이 촘촘하게 표현되는 것은 나말여초의 불상들에서 넓은 띠모양의 주름이 일반적으로 유행하였던 것과 다른 양상인데, 이는 일부 신라하대 조각에서 보이는 평행밀집문이 이 지역 불상에서는 고려초기까지도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음.
  당시 원주지역에서 유행했던 불상양식은 신라하대의 조각경향 가운데 아름답고 여성적이며 온화한 양식을 특징으로 하는 경주와 경북일원의 조각전통을 기초로 하되 더욱 사실적이고 섬세하며 장식적인 경향으로 진전되었던 것으로 생각됨.
  이전에 볼 수 없던 인간적인 불상은 신라하대 불상의 현실화되고 세속화된 양식에서 한층 더 심화된 것으로 이해되는데 이것은 같은 시기의 충주, 괴산, 광주 등지의 불상양식과는 확연히 구별되므로 원주지역 조각의 특징으로 보아도 좋을 것임.
  도상적인 면에서 비로자나불상이 다수 전하고, 보수적인 경주지역 불교미술계에서는 크게 유행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되는 약사불의 도상이 나타나며, 나말여초기 미륵신앙의 성행을 알려주는 미륵보살의 유형이 원주지역에서 보이는 것은 당시 원주지역 불교계의 활발한 움직임과 다양성을 알려주는 것이며 이것은 바로 고려사회에서의 원주의 位相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음.

   <제3주제> 원주법천사 발굴조사 성과와 의의
     발표 : 지현병·윤석인(강원문화재연구소)

  원주 法泉寺址는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2리 서원말에 위치하며, 강원도 기념물 제4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寺域內에는 智光國師玄妙塔碑(국보 제59호)를 비롯하여 幢竿支柱(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0호)와 탑비전지(건물지 3동), 愚潭 丁時翰 선생의 사당지가 남아 있음.
  법천사지에 대한 학술적인 조사는 1938년 日人학자인 小川敬吉(1882∼1950)에 의해 처음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1965년 국립박물관(현 국립중앙박물관)이 탑비전지 일대에 대한 보수 및 발굴조사를 실시한 바 있음. 이 후 현묘탑을 비롯한 석물 그리고 지광국사 海麟과 관련된 단편적인 글이 일부 소개되었으나 법천사의 전반적인 성격을 규명할만한 연구성과는 없었음.
  법천사지 발굴조사는 2001∼2002년도 문화재보호구역(61,876㎡, 18,717평) 전체에 대한 시굴조사를 토대로 1차 6개년에 걸친 중장기 발굴조사계획을 수립한 후에 연차적인 발굴조사로 진행되고 있음.
  법천사지 발굴조사는 이제 겨우 시작단계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추후 전면적인 발굴조사가 모두 이루어진 다음에 본 유적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와 검토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판단되며, 이를 위해서 법천사지 유적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조사계획과 정비, 복원 등 종합적인 마스터플렌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됨.
  Ⅰ구역 조사에서 건물지 3호의 하층조사를 실시한 결과 건물지가 3번에 걸쳐 중복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탑비전지 남편석축이 가장 늦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파악됨에 따라 이 지역은 적어도 3∼4번에 걸쳐 증·개축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며, 이 구역의 층위별 출토유물의 양상을 살펴보았을 때, 末麗初부터 朝鮮前期까지 폭 넓은 기간동안에 해당되는 다양한 유물들이 확인되었음.
  Ⅲ구역 조사에서는 나말여초에 해당되는 유구와 유물이 다량 출토되었고, 특히 소량이지만 기와에서 三國時代(新羅)까지 연대가 소급될 가능성이 있는 花紋수막새와 線紋평기와가 출토되어 統一新羅 이전 법천사 創建期의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중요한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큼.
  Ⅲ구역 출토유물 중에는 佛敎美術史的인 측면에서 획기적인 자료가 확인되었음. 통일신라말의 양식으로 추정되는 銅佛 像을 비롯하여 2점의 石造菩薩 像, 月精寺와 神福寺址 石塔 앞에 있는 石佛坐像과 비슷한 양식의 菩薩像, 石造佛像 및 佛臺座, 평면 \'亞\'자형의 몰딩이 보이는 花臺石, 異形의 석탑 屋蓋石 등은 앞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유물로 평가됨.

   <제4주제> 북원문화권의 정체성과 기본구상
     발표 : 김주원(강원발전연구원 연구위원)

  북원문화의 개념과 문화권 범위는 원주를 핵으로 하여 강원영서남부 일원을 포괄하는 지역이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치악산과 남한강, 섬강을 중심으로 산재한 많은 문화 유산과 그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문화현상을 북원문화로 규정하여 이러한 북원문화가 직접 혹은 간접으로 영향을 미쳐 형성된 문화권역을 북원문화권으로 설정하고자 함.
  북원문화권의 역사정체성은 고려(KOREA)의 발생지, 불교문화의 보고, 삼국문화의 융합, 우국충절의 고장, 물류유통의 중심지임.
  계획수립의 목적 및 의의는 북원문화권 중요성 증대와 국가 종합개발계획과 연계를 바탕으로 북원문화권 정체성 인식확산, 역사문화유산 보존 및 활용방안 극대화, 북원문화권 홍보방안 극대화를 통하여 북원문화권이 분권시대 내륙문화의 중심지가 되도록 하는 것임.
  계획수립의 방향은 우선 북원문화의 역사정체성을 기반으로 문화유산에 대한 개발계획을 수립하고자 함.
  타문화권과 비교하여 차별화 된 역사정체성이 무엇인가를 탐색하여 이를 토대로 문화유산에 대한 복원과 보전계획을 수립하고 관광자원화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자 함.
  즉 북원문화권의 특성 및 비교우의적 특성을 고려하면서도, 향후 사회·문화적 환경 변화를 맞는 발전지향적인 개발전략을 마련하고자 함.
  북원문화권 조성계획의 주요사업내용은 북원문화권 정립을 위한 핵심개발 사업으로 다음과 같은 사업을 구상하고 있음.
   ① 북원역사문화박물관 건립, ② 북원역사문화단지 조성, ③ \'보은의 광장\' 단지 조성, ④ 불교문화유적지 정비 및 불교체험관 건립, ⑤ 충렬사 복원, ⑥ 칠봉서원 복원, ⑦ 고려(Korea) 발상지관련 사업(건등산 중심 기념물 조성, 북한 개성과 자매결연사업) 등
  이 내용은 추후 여론 수렴, 워크샾을 통한 전문가 토론 등을 거쳐 확정할 예정임.
  이외에도 ① 인물선양사업, ② 중요 사찰지에 대한 정비, ③ 체계적인 문화재·산성 정비 사업에 대한 방향도 구체적으로 계획할 예정임.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 조사

담당자 정보

  • 최종수정일 2024.04.03